이끼숲
스포일러 : 내용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바다눈
“노련하다는 건 남들이 정해주는 거야. 그 일에 노련해졌다고. 근데 우리가 하는 일은 막일이잖아. 사람들은 이런 일에 노련하다는 단어 안 써줘.”
패드 속 지상의 세계에선 눈이 내린다. 비인가, 먼지일지도 모르겠지만.
한 챕터를 다 읽고 느낀 것은 '어쩌라고'다. 어떤 사고의 연장도 없었다. 인물들은 땅 아래 지하에서 살고 있었고, 마르코는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자각하지 못하여 은희에게 호감 정도만을 내비쳤으며, 은희는 자신의 환경이나 처지에 대해 그 누구에게도 의지하거나 도움을 구할 수 없었다. 마르코는 가짜 하늘에서 가짜 눈이 내리는 세상에서 거주지나 근무지, 인구 수 통제에 대해 순응하며 살고 있었고, 은희는 그 모든 것을 자각하여 모험, 혹은 도망치고자 하였다. 어쩌면 새장 같은 땅 아래 세상이 아닌 은희 자신의 숨 막히는 환경 그 자체로부터 절망했던 걸지도 모른다. 은희는 모든 것에 절망감을 느끼면서도 부양해야 할 어머니가 있었기에 도망치지 못했다. 돈은 부족하고 노조 파업에 서명한 것으로 직장에는 불려가 한소리 들었고, 절망과 우울이 공존하여 몰아쳐 벼랑 끝에 내몰린 은희는 결국 자신의 목소리를 팔았다. 챕터 초반에 언급된 내용을 토대로 추측하자면 목소리를 비싼 값에 온전히 팔아 성대가 파괴되었을 것이다. 마르코가 근무 중 들었던 통풍구의 쿵, 쿵 소리는 은희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은희가 통풍구를 통해 완전한 자유를 찾으러 갔을 수도 있지만, 작중에서 은희는 어머니를 버린다는 선택지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 소리는 그저 은희가 어딘가로 떠났다는 것에 대한 작가의 암시였을 것이다. 자, 여기까지 추측은 가능하다. 하지만, 그래서, 뭐, 어쩌라고. 나는 모든 인물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행동이나 대사를 어느 정도 이해했다. 이야기의 결말은 세계관과 인물과 상황이 맞물려 만들어진 것이다. 그것에 나는 이해했을 뿐, 더 생각할 만한 것은 없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 당시에는 위의 것을 느꼈었는데, 과연 저것이 최선이었는가. 바다눈 챕터를 읽은 나의 밑줄은 삼십 개 정도가 되는데, 그것들을 되새기는 지금. 나는 여전히 내가 담은 문장들이 이끼숲이라는 소설의 세계관을 잘 나타내는 운치 있는 문장들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그뿐인 문장들. 우리의 세계는 조급하고, 초라하고, 두려웠다.
우주늪
웃음 뒤에는 더 큰 증오가 오니까. 고작 그까짓 게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감정들이 비선형적으로 마구 번져나가. 주체가 안 돼.
뻔뻔해지고, 대범해지고, 강해지고, 비열해지고. 뭐든 괜찮아. 멍청해지지만 말자, 우리.
그럴 때의 너는 정말 야박하고, 못됐고, 이기적인데 그걸 완벽히 흉내낼 수 없다는 게 억울하다. 이기적이란 게 그래. 그것도 결국 좀더 가진 자만이, 조금 더 거대한 자유를 누리는 자만이 부릴 수 있으니까.
언제였더라, 이기적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어. 나는 아직도 그때가 선명하게 기억이 나. 교실에서 조별로 모여 케이크를 만들었는데, 각자 가져온 준비물 중에 나는 생크림과 짤주를 가지고 있었어. 나는 내가 짤주머니가 있으면 생크림을 예쁘게 케이크 위에 얹을 수 있을 줄 알았어. 그런데 아니더라. 그래도 어찌저찌 과자를 얹고 생크림을 짜서 케이크를 완성하고 있었어. 선생님이 온 건 그때였어. 다른 조의 아이한테 내가 사 온 짤주머니를 빌려줄 수 있냐고 묻더라. 나는 싫다고 했어. 내가 속한 조의 조원도 아니었고, 그건 내가 나의 부모님 돈으로 사 온 거였고, 이후 몇 번이나 생각해 봐도 '내 거를 안 빌려줬다는 이유로 이기적이라는 말을 들어야 했나?'라는 질문만 떠올라. 지금 정립한 나의 가치관까지 곁들여 생각해 보면, 그걸 원한다고 직접 와서 빌리는 것이 아닌 선생님을 통해서 빌려가는 것도 괘씸해. 나는 의조의 말에 동의해. 인정할 수밖에 없어. 이기적인 건 결국 무언가를 가져야만이 추구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내가 이미 가진 것을 놓는 것은 엄연히 나에게 있어 손해인데, 내가 손해를 보면서까지 남과 나의 것을 나눠야 할까? 물론 의조와 의주의 경우는 제 3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뒤바뀌어도 쉬이 말을 얹을 수 없다고 생각해. 하지만 나는 두 인물의 경우가 아니었잖아. 내가 이미 지녔음에도 더 많은 것을 지니기 위한 이기심은 이기심이 맞지만, 내가 이미 지닌 것을 놓기 싫어하는 마음 또한 이기심일까? 나는 손해를 보고 싶지 않았어. 그렇게 살아가고 싶지 않았어. 이 마음이 이기심이야? 만약 그렇다면 나는 이기적인 삶을 살아갈래. 나는 내 거절에 대해 선인지 악인지 생각했어. 선과 악은 상극이지만 동시에 한끗 차이이기도 해. 법이라는 것으로 나름의 도덕적 윤리적 기준이 정해져 있긴 해도, 구체적인 선과 악의 경계란 결국 사람마다 달라. 나는 그런 것들을 정의내리기보다는 나의 생각을 단단히 정립했어. 나의 거절을 이기적이라는 악으로 분류해도 상관 없어. 나는 아주 절박하지 않는 이상 내가 이미 지닌 것들을 놓고 싶지 않고, 이것이 이기적의 기준에 부합하다면 기꺼이 이기적인 삶을 살고 있노라 말하겠다고 나의 생각을 굳힌 거야. 그래서 나는 이 문장을 남길게. 우리 외부의 평가로 정의되지 말자.
→ 위 메모도 당시에 읽으며 적었었는데, 음, 나는 아무래도 이기적인 게 맞나 봐. 우주늪 챕터의 끝자락까지 읽다가 말았던 것 같은데, 이끼숲이란 책을 마지막으로 펼쳤던 게 6월 말이라서, 우주늪의 감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마지막 챕터인 이끼숲까지 완독할 수 있을까? 생각할 거리가 있는 책이므로 7월 안으로는 완독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걸로.
각 챕터마다 해당 챕터의 이름이 왜 붙었는지 유추 가능한 문장들이 나온다. 그 문장은 독자의 시선을 앗을 거고, 많은 이들이 다양한 표시를 하게 할 것이다. 읽을 수도 있으니 그 재미는 남겨두겠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